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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부터 6시까지, 한겨레신문 봉천지국장 김하연(40) 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다. 매일 봉천동 250여 가구에 신문을 돌리는 게 그의 일이다. 밤낮이 뒤바뀐 생활은 고단하지만, 새벽마다 자신을 기다리는 길고양이를 생각하면 다음날 또 다시 거리로 나설 힘을 얻는다. 길고양이를 돌보며 사진 찍는 생활사진가 ‘찰카기’-김하연 씨의 또 다른 이름이다. 새벽 6시,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낙성대역에서 김하연 씨를 만났다. 오토바이를 타고 길고양이 밥 주는 곳까지 갈 거라고 했다. 그는 고 3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신문을 돌렸고, 대학을 졸업한 뒤 한동안 잡지사 기자로 일하다 다시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았다. 새벽마다 그와 함께 달렸을 오토바이는, 높아졌다 낮아지는 봉천동 골목의 굴곡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파도처럼 출렁인다. 어느 빌라 앞에 오토바이가 멈추자 후다닥, 작은 동물이 달아나는 소리가 들린다. 김하연 씨가 밥을 챙겨주는 길고양이들이다. 빌라 근처 길고양이들은 익숙한 사람에게만 경계심을 푼다. 그래서 김하연 씨는 7년째 같은 방한파카를 입고 신문배달을 한다. 고양이들이 그 옷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희미한 조명등 아래, 말없이 올려다보는 고양이와 사진 찍는 김하연 씨 사이에 따스한 교감이 흐른다.
또 다른 장소에서 밥을 기다릴 고양이를 찾아 오토바이로 달리는 동안 날이 밝는다. 놀이터 인근에 멈춘 순간, 김하연 씨를 기다리던 길고양이 서너 마리가 반갑게 뛰어온다. 강아지처럼 살가운 모습에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묻어난다. 서로 인연을 쌓아온 시간만큼 다져진 믿음이다.
“새벽에 만난 고양이들은 ‘내가 이 도시의 주인이다’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낮에 만나는 고양이들과는 느낌이 확실히 달라요. 더부살이를 한다는 느낌이 없어요.”
김하연 씨가 길고양이들의 사진에 담아내는 마음은 생명에 대한 연민이다. 평소 돌보던 고양이의 죽음을 목도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준비 없는 이별은 마음에 묵직한 슬픔을 남긴다. 그의 오토바이 한구석에는 늘 검은 대형 비닐봉투가 있다. 배달하며 오가는 길에 죽은 길고양이를 발견하면 일단 봉투에 담았다가, 일이 끝나면 나무가 있는 곳을 찾아 묻어준다. 다시 태어났을 때는 나무로 태어나라고. 험한 세상 견디며 그늘진 곳에서만 사느라 힘들었으니, 이제 햇살 받으며 푸른 잎으로 피어나라고. “죽은 고양이를 그대로 두면 쓰레기차가 수거해가거나, 바퀴에 짓눌려 형체도 찾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수습해주고 싶었어요. 생명이란 건 인간이나 고양이나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생명은 죽으면 땅으로 돌려보내야 하는데, 얘는 가족이 없으니까 나라도 묻어주고 싶은 거죠.”
“아마추어 작가들이 사진을 찍다 보면 어느 순간 한계가 와요. 사람을 한번 찍어보려고 하면 찍지 말라 그러지, 새로운 것은 찍어야겠지. 그래서 출사를 다니고 이것저것 찍게 되죠. 저는 2006년 사진가 최광호 선생님이 주관하는 1019사진상을 받으면서 연작 개념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새벽 신문배달을 하다 만나는 취객들을 찍은 ‘해프닝’ 연작이었죠.”
자기 이름을 새긴 낙관을 포트폴리오 공모전의 부상으로 받으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업 중에 짬짬이 사진을 찍지만, 자신만의 시각을 담은 작품을 하고 싶었다. 자신의 생활 터전인 새벽 거리로 눈을 돌리자, 또 다른 피사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게 바로 길고양이였다. 2005년 말부터 관심을 갖고 그들을 찍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찍은 건 2006년 여름께였다. 그렇게 길에서 만난 길고양이의 사진을 모아 2007년 11월 <고양이는 고양이다> 사진전을 열었다.
김하연 씨는 고양이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도시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으로 받아들인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늘 아름답지만은 않듯이, 그가 찍는 길고양이도 때론 외롭고, 아프고, 슬프다. 그 사진들은 조용히 마음을 움직여, 우리보다 낮은 곳에 소리 없이 살아가는 생명이 있음을 일깨운다.
그가 사진을 통해 표현하는 건 ‘도시에서 살아가기’란 어떤 일인지에 대한 관점이다. 2008년 봄, 사단법인 문화우리에서 주관한 도시경관기록프로젝트 기록봉사자로 참여한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그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경탄하는 풍경이나 예쁜 피사체를 찍는 대신, 자신이 발 딛고 선 현실에 눈을 돌린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소중한 대상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2008년 국제적 사진그룹 매그넘에서 주관한 사진공모전 대상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그가 찍은 건 ‘옥상정원’. 공모전 마감 전날 그의 집 옥상에서 찍은 풍경이다. 봉천동 어느 주택 옥상에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가 서 있다. 사진 속에선 보이지 않는 아주머니의 시선이 닿은 곳은 멀리 보이는 도심의 번화가 쪽이다. 아주머니가 발 딛고 선 회색빛 옥상 풍경은, 멀리 보이는 화려한 빌딩의 바다를 표류하는 초라한 뗏목 같다. 화려한 색으로 무장한 것도 아니고, 기기묘묘한 구도를 보여주는 사진도 아니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그의 사진에 담긴 담담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읽어, 대상작으로 선정했다.
사진 전공자도 아닌 보통사람이 자신의 사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길은 공모전밖에 없기에, 그도 상을 받으면 힘이 난다. 그런데 몇 번 상을 받으면 슬슬 ‘헛바람’이 들기 쉽다. 왜 세상이 자신의 작품을 인정해주지 않나 조바심도 내게 된다. 하지만 김하연 씨에겐 그런 헛바람이 스며들 틈이 없다. 사진으로 큰 상을 받았어도, 여전히 신문배달을 하며 틈틈이 사진을 찍을 뿐이다. 김하연 씨는 카메라와 함께 휴대용 소형 프린터를 갖고 다닌다. 거리에서 누군가를 찍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사진을 뽑아주기 위해서다. 그에게 사진은 나눔이고 소통이다. 2007년 고양이 사진전을 열었을 때도, 직접 찍은 길고양이 사진을 동봉하고, 겉봉에는 주문제작한 고양이 우표를 붙여 보냈다. 그렇게 정성껏 초대장을 써서 보내면, 전시장에 온 사람들도 방명록에 자기 마음을 진솔하게 써줄 것 같았다. 이름만 남기고 가는 방명록보다 고양이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전시장에 찾아왔던 어느 수녀님께 받은 격려 문자는 휴대폰에 장기 저장해두고 생각날 때마다 열어본다. 묵묵히 길고양이의 삶을 기록해 온 그에게는, 그런 교감의 흔적이 더없이 소중한 보물들이다.
“첫 전시에서 작품을 사고 싶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얼마를 받아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작품을 팔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몇 점을 팔았는데 액자값 말고도 돈이 남아서, 고양이 관련 단체에 보냈어요. 앞으로도 작품을 팔게 되면 길고양이를 구하는 데 쓰고 싶어요.” 김하연 씨는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길고양이 사진전 준비에 바쁘다. 오는 5월 14일부터 20일까지 대학로 갤러리카페 ‘공간 루’에서 열리는 전시에 낼 사진들은, 모두 6×6인치 정방형으로 트리밍을 할 예정이다. 하셀블라드 같은 중형카메라 포맷을 연상시킨다. “길고양이들에게 삶이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거란 느낌이 들어요. 단순한 길고양이의 초상사진이 아닌, 정사각형 프레임 속에 갇힌 듯한 고양이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요.”
두려움 반, 호기심 반. 6×6 중형카메라 포맷으로 트리밍했다. ⓒ김하연 그가 앞으로 찍고 싶은 고양이 사진의 폭은 넓다. 낡고 오래된 벽 사진과 길고양이 사진을 합성해서 고대 이집트의 고양이 여신 벽화 같은 느낌을 표현해볼 생각이다. 장기적으로는, 길고양이를 입양해 키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기록사진도 찍어보고 싶다. 길고양이를 입양한 이후 반려인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길고양이는 입양된 뒤에 행복할까, 그런 점이 궁금하다. 이렇게 다양한 길고양이 사진을 통해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나와 가장 가까운 곳, 일상을 구성하는 작은 것들’에 대한 관심이다.
길고양이 사진을 찍어오면 듀얼모니터로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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